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든 뱅크스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1963년에 [[알프 램지]]가 잉글랜드 대표팀의 감독이 된 후, 잉글랜드가 맞이한 첫 메이저대회는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였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1963년에 열린 예선 경기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2-5라는 굴욕적인 점수의 패배를 내주고 만다. 이 충격패를 기점으로 잉글랜드 선출위원회는 감독에게 선수 선발 권한을 넘겼고, 램지는 프랑스전에서 실수를 연발한 골키퍼 론 스프링겟을 대체할 새로운 수문장을 찾기 시작한다. 램지는 레스터 시티의 젊은 골키퍼 고든 뱅크스를 주전 골키퍼 자리에 앉혀보기로 했고, 이후 여러 경기에 내보냈다. || [[파일:1963GordonBanks.jpg|width=100%]] || || 1963년 잉글랜드 vs 세계 올스타 경기에 출전한 뱅크스의 모습 || 뱅크스 외에도 블랙풀의 [[토니 웨이터스]], 첼시의 [[피터 보네티]], 맨유의 [[알렉스 스테프니]], 그리고 재기를 노리는 전임자 론 스프링겟 등 걸출한 골키퍼들이 램지의 미래 국가대표 골키퍼 후보군으로 발탁되어 크고 작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결국 뱅크스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두 이겨내고 주전 자리를 꿰찼다. 1965년까지도 이 흐름은 계속되었고 뱅크스는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준비하게 된다. 뱅크스는 레이 윌슨, 바비 무어, 잭 찰튼, 조지 코헨이 이끄는 잉글랜드의 철통 수비진의 일원이 되었고, 매 경기 중요한 선방들을 해내며 잉글랜드의 월드컵 직전 무패행진을 이끌었다. 월드컵이 시작된 후, 준결승전에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포르투갈]]의 에이스 [[에우제비우]]에게 페널티킥 실점을 내주기 전까지 443분 동안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다. 페널티킥도 좀 어처구니 없이 내주었는데, 당시 팀의 최고참이던 [[잭 찰튼]]이 경기 막판에 저지른 어이없는 핸드볼 반칙 때문이었다. 여튼 이 443분 무실점 기록은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발테르 쳉가]](517분)에 의해 경신될 때까지 무려 24년 동안 지속됐다.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을 상대로도 2:1승리를 거두었다. 결승전에서 떠오르는 신예 베켄바워가 있는 서독을 상대해야 했지만, 이 역시 문제없었다. 절정의 폼을 맞고 있던 [[바비 무어]]와 마틴 피터스, [[제프 허스트]] 통칭 '웨스트햄 트리오'가 각 2어시스트, 1골, [[해트트릭]]으로 맹활약하며 4:2승리를 거두었다. 뱅크스는 쥘 리메 컵을 만져본 유럽 국적의 마지막 골키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 [[파일:WCWBanks.jpg|width=100%]] || || 쥘 리메 컵을 들어올리는 뱅크스 || [[UEFA 유로 1968]]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잉글랜드가 최종 3위를 기록하는 데에 기여했다. 전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예선 없이 바로 참가한 1970년 월드컵에서도 당연히 주전 골키퍼였다. 뱅크스는 바비 찰튼과 함께 팀의 최고참이었고 1966년 월드컵 우승 덕에 라커룸에서 모두가 우러러보는 선수였다. 조별리그 1차전 루마니아전에서 잉글랜드의 빈공에도 불구하고 뱅크스와 무어 등 철통 수비진의 훌륭한 활약 덕에 1:0승리를 거두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WHATASAVE.gif|width=100%]]}}} || || '''{{{#e31e31 뱅크스의 선방}}}''' || >'''"What a save! Gordon Banks...!"''' >---- >[[케네스 월스턴홈]], BBC 해설위원 특히나 조별 리그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누가 봐도 구석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골이 될 만한 [[펠레]]의 헤더를 세이브한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굉장히 막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당시 뱅크스는 펠레와 반대방향에 있다가 크로스를 따라 올라온 상황이라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거기다 펠레의 헤딩은 골대 2야드 앞에서 바운드 되어 궤적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뱅크스는 서있던 자리에서 오른쪽 뒤로 대각선 방향으로 몸을 날려야 했고, 그런 자세에서 옆으로 걷어내거나 잡아내는 건 불가능했기에 손가락으로 위쪽으로 튕겨보내 공을 크로스바 위로 걷어내는 것만 가능했다. 뱅크스 스스로도 이건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직후 펠레의 반응을 보고 막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괜히 세기의 선방으로 불리는게 아니다.][* 막아낸 이후 고든 뱅크스는 "앞으로 사람들은 저를 월드컵 우승이 아니라 그 선방으로 기억할 겁니다. 그건 그럴만한 것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아쉽게도 0:1로 잉글랜드가 지고 말았으나, 1970년 브라질 대표팀은 '''[[펠레]]와 [[자이르지뉴]], [[토스탕]], [[호베르투 히벨리누]], [[제르송(1941)|제르송]]이 군림한 세계 최고의 팀'''이었고 축구 역사상 최강팀을 뽑을 때 1위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팀이다. 본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제외하면 만나는 팀마다 3:1, 4:1 정도로 승리를 거뒀으며 '''예선 포함 12전 12승으로 우승'''하는 정신 나간 기록을 세웠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고, 3전 2승 0무 1패 2득점 1실점으로 브라질에 이어 조 2위를 기록하며 8강에 무난하게 진출했다. 그러나 이후 뱅크스는 식중독으로 인해 다음 경기에 결장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고 8강 상대였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에게 3:2로 패하여 탈락하게 된다. 특히 실점한 세 골 모두 뱅크스 대신 출전한 [[피터 보네티]]의 아쉬운 경기력 때문에 나온 실점이었기에 잉글랜드로서는 정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1972년에는 유로 예선을 6전 5승 1무 0패로 손쉽게 통과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팀 서독을 만나게 되면서 탈락했다. 어느덧 35세가 되었음에도 뱅크스의 활약은 여전히 빛났는데, 결승골이 된 [[귄터 네처]]의 [[페널티 킥]]을 완전히 읽어냈고 날아오는 공을 손에 맞히기까지 했으나 슈팅의 파워가 워낙 강력해 바로 옆그물로 들어갔다. 이후 고군분투했지만 [[게르트 뮐러]]에게도 추가골을 실점하며 3:1로 패했다. 그리고 2차전에서는 양 팀 모두 무득점을 기록했고, 따라서 총합 3:1로 서독이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1972년 10월에 교통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으면서 국가대표팀에서 [[피터 쉴튼]]&[[레이 클레멘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